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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복수기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분들이 보내주신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알코올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치료의 조력자가 되어 가정의 평화를 되찾으신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회복수기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알코올 중독 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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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더디지만 시작된 회복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711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2019 가족수기 공모전 장려상]

 

더디지만 시작된 회복

 

○○

 

이 글을 쓰는 것은 절망적인 분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며 저의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 봅니다. 다사랑중앙병원과 인연이 된 지 1년이 되어갑니다. 작년 4월에 입원했고, 2019319일 화요일에 가족모임과 병원 교육을 마치고 2층 개방병동에서 남편을 면회했을 때 마음과 행동이 평온해 보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오디오를 켜고 이루마의 피아노곡을 들으며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30년 전 남편과의 만남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남편의 첫인상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아 보였지만 잘난 척하지 않고 착해 보였습니다. 가끔씩 술 먹는 것도 보였지만 그것이 이렇게 큰 병이 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우리 친정집은 남자 형제가 없어서 술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고 술을 조금 먹는 것이 더 좋아 보였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매일 술에 취해 있는 모습에 심각성을 깨닫고 그때서야 결혼을 후회했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직업이 국가공무원인지라 공무원의 아내로서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술 문제만큼은 고쳐지질 않았고 술을 적게 먹게 하려고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전출하기를 권유했습니다. 일을 바쁘게 하다 보면 술을 먹을 시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생각했습니다. 술을 먹지 않으면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남에게 싫은 말도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나 술로 실수를 수차례 저지르고 항상 무사히 들어와야 맘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가정에 충실하고 신앙으로 기도해 전념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0년도에 남편이 단주했고 너무 신기할 정도로 변화된 삶이 지속되었고 우리 가족은 병에서 완전 치료된 줄 알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저도 남편도 이 병에 대해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삶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살고 있던 분당 신도시 집값이 올랐고 커가는 아이들의 교육비 때문에 제가 부모님 말씀만 듣고 대출받아 지방에 사놓은 집이 이자는 오르고, 집값은 떨어지면서 늘어가는 채무를 감당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저 역시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어머님께서 암 투병으로 집 근처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내성적으로 소심한 성격으로 누구와 의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큰 상황으로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술을 다시 마시는 이전으로 다시 되돌아간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놀라서 수 없이 휴대폰으로 연락했지만 남편과는 통화되지 않았고 직장에서 없어져서 집에 들어오면 술 냄새가 너무 심했고 모든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아는 지인으로부터 정신건강의학과를 소개받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남편이 우울증이라고 하고 남편 직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개인 정신과 알코올병원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상황은 좋아지질 않고 심각해져 가던 중 직장에서 국장님께서 집으로 전화하셔서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국장님은 승진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나 안타깝다면서 가끔씩 직장 근처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와 술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 있었던 상황을 그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고 국장님께서 대책을 세워 주셨습니다. 일단 서울 공무원 임대 아파트로 이사하고 매일 퇴근 시간에 직장으로 와서 같이 집으로 같이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때 남편은 직장인이라서 카드를 소지하고 있어 하루에도 술값으로 몇백만 원씩 쓰는 상태라서 혼자 두면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좋아지질 않아 1년 동안 휴직계를 내고 치료받은 후 다시 복귀하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두렵고, 팔이 후들후들 떨립니다.

 

그때부터 저는 집안의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 교육비와 병원비 때문에 돈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을 처음 입원시킬 때는 다시 사회생활을 못할 것 같아 펑펑 울었습니다. 강제입원에 대한 원망으로 저에게 협박과 욕설을 했고, TV를 부수고 병원 직원과 싸우기도 하고, 성격이 날이 갈수록 난폭해졌고 저에 대한 원망으로 희망이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강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병원 치료를 해도 좋아지질 않아 병원에 입원시킨 채로 명예퇴직을 신청했습니다. 퇴직하는 날 감사패를 제가 대신 받고 돌아오면서 얼마나 울었던지요. 밖에 나오면 술을 무척 많이 먹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 개인병원 여자 원장님은 제가 불쌍해 보였던지 환자를 버리고 도망가라고 해서는 안 될 말씀을 하실 정도로 남편의 성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해졌습니다. 그리고 입원과 퇴원을 수십 번도 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제 휴대폰에는 사설 구급차 번호가 입력, 저장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저는 담대하고 강해졌습니다. 이 짐을 제가 져야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결혼 후에 저희 남편의 형님이 술로 세상을 떠나신 것과 같이 남편은 유전적인 술 문제가 많은 가족력이 있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13년 동안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다사랑중앙병원에 오게 된 것은 작년 4월입니다. 남편이 퇴원 후에 외래로 병원을 다녔으나 치료되지 않아 어느 날 갈망감이 올라올 때 인터넷 검색 후에 제가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해 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남편은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냥 집에 두면 나가서 방황하다 조절이 안 되는 술 문제로 죽을 것 같아 고민 끝에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죽더라도 다사랑중앙병원 치료를 받는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 냉정하게 병원 치료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으며 상담사님과 함께 치료 계획대로 따라갔습니다.

 

입원 중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2년 전 지방에 사무실 개업한 것 때문에 은행 연장 건으로 외출과 지방 사업장에 내려갈 때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받고 재발되어 삼일 만에 재입원한 일, 개방병동 3일 만에 소주 10병 먹고 차에 뛰어들어 경찰차에 실려 온 일, 다시 관리병동으로 입원한 일 등 놀라고 힘든 과정을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저는 철저하게 병원 규칙에 따랐고 다사랑중앙병원 가족교육은 빠지질 않고 참석했습니다. 교육 내용은 환자가 모두 겪은 내용이었습니다. 작년 겨울 재활병동에서 지방 사무실에 가던 중 음주 충동이 와 남편은 결국 저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오기 전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지방 사무실에 어떻게 다녀왔는지 모를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입원했습니다.

 

2019년 구정날 아들과 함께 면회했을 때 드디어 기적적인 말이 나왔습니다. 남편은 성격책과 노트, 필기도구를 갖다 달라고 했습니다. 강한 집중력으로 성경 필사 후에 변화되는 마음이 전과 분명 다른 모습입니다. 이제는 마음이 평온하다고 했고 특히 본인보다 아이들 걱정을 많이 하고 병원 치료를 더 받아보겠다고 합니다. 변화는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2019년 봄날 햇빛과 공기와 물, 자연이 주는 하나님의 선물같이 남편은 변화의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얼었고 시렸던 겨울의 땅 같았던 우리 가족에게 세상 욕심을 다 내려놓고 작은 것에 감사할 때 생각하지 않았던 축복이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나 자신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남보다 더딘 회복이지만 그러나 변화되고 있다고 외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