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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어둠과 빛 그 경계에서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12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8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참가상]

 

어둠과 빛 그 경계에서

 

○○

 

모든 것이 생기를 잃어 회색빛으로 변한 삶, 나의 날카로운 가시로 작은 희망마저도 찢겨버린 가족, 너덜너덜해진 몸과 갈 길을 잃어버린 공허한 마음까지. 술은 나의 그림자를 움켜쥐고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검게 물들였고, 내가 진정 바라던 모든 것을 짓밟아 뭉개어 그 이상을 앗아갔다.

 

나는 원하지 않았다. 이런 삶을 원한 적 없었다. 그럼에도 그 마음이 거짓인 것처럼 나는 술에 취해 아버지와 어머니께 폭언했고, 인사불성이 되어 어머니의 배를 발로 찼으며,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말을 하기엔 너무나 비참하고 큰 상처들을 주위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주었다.

 

술을 접한 지 1여 년만인 18살부터 시작된 중독과 26살부터 시작된 입원 치료 그리고 지난 9년간 10여 차례의 재발과 회복을 거치는 입·퇴원의 반복까지. 이것이 술이 나에게 안겨준 시간이자 삶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내게 스스로 술잔을 들고 마셨기에 스스로 중독을 선택한 것이라 할 땐 의식적인 선택만은 아니라는 마음은 억울함으로 울렁거림과 함께 비참함에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 너의 잘못만은 아니야라며 위로할 때엔 흐르는 눈물 뒤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준 상처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숙명과도 같이 삶에 다가온 중독은 내겐 모순과도 같았다.

 

이런 나도 사랑받는 맏아들이자 장손으로 태어나 많은 기대 속에 자랐다. 성실함으로 묵묵히 나아가던 아버지 그리고 집안일과 육아를 완벽히 해내시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왔다. 그럼에도 나의 어릴 적 기억은 너무나도 아팠던 교육적 체벌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학대와도 같았던 순간들로 채워져 행복한 순간들은 다 지워져 버린 듯 잘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 집 벨을 누르는 것이 두려웠던 초등학교 시절, 그 어린아이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던지 머리채가 잡혀 안방까지 끌려가 내팽개쳐진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무 빗자루로 맞기 시작했고 나의 기억은 그것을 구타라 기억하고 있었다. 맞으면서 자연스레 방 한구석까지 몰리면 벽을 보고서서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 피가 배어날 때까지 맞아야 했고,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시계를 바라보며 30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렇게 나의 벌이 끝나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부모의 양육방식이라기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고 나는 어머니의 인정을 받고자 했다. 뭐든지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학교 과학경시 전국대회 진출이 좌절된 뒤 나는 완전히 180도 달라진 삶을 살기 시작했다. 비교적 얌전하고 내향적이던 나는 대담하고 외향적인 성향으로 변했고 당시 일진 친구들에게 담배와 술을 배웠다. 그렇게 1년이 지나 한 생명이 나로 인해 세상의 빛을 마주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됐다고 여기던 사건 뒤, 그에 대한 깊은 죄책감과 고통과 함께 알코올 중독이라는 지독한 삶이 시작되었다. 수차례의 자살 시도와 가출, 폭행 그리고 그 뒤에 감추어진 깊은 죄책감.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라 부정하며 술만 마시는 그림자의 시간으로 채워졌고 그것이 내 고등학교 시절이 되었다. 나는 집에 없었어야 했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가 되었다.

 

대체 날 왜 알코올 중독자로 낳은 거야! 왜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거야!”

네가 날 버린다고? 네가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널 먼저 버릴 거야!”

 

술에 취해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 눌러두었던 날카로운 말들을 부모님께 내뱉던 날, 나는 죽어야 했다. 하지만 신은 내게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262월에 있었던 그 일 뒤로 신은 내가 넘어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한 달 반 가량을 밤낮으로 마신 술로 인해 방 안에서 죽어가던 내게 비추어진 십자가로부터의 환한 그 빛은 온몸이 굳어져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던 그때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 바들바들 떨며 식은땀에 축축한 이불 위에 썩어가던 내 몸을 비추었다. 눈물이 흘렀다.

 

드디어. 드디어 제가 죽을 수 있는 건가요?’

 

나의 삶을 모두 내려놓던 그 순간 어둠 속에 갑자기 빛이 비치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조그마한 십자가상으로부터 내게 환한 빛이 비치었고, 심장이 조여 왔고 눈물이 흘렀다.

 

이런 쓰레기 같은 제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도 살 수 있다고.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시는 겁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 여기던 내게, 중독은 빛과 함께 다시 돌아와 살아가라 했다. 술을 마시고픈 충동적 욕구에 다시 무릎 꿇어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 엎어져도 신은 다시 빛과 함께 다가와 손을 잡았다. 신은 내게 어둠과 빛의 경계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요구했다.

 

고통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축복이다고 했던 칼 융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중독은 내가 소중하다 여기던 모든 관계에 죽음과도 같은 해를 끼치고 고통을 안겨주며 나를 철저한 고독 속으로 몰아넣어 혼자가 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중독은 다시금 지금부터 내딛는 걸음을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진정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어떻게 소중히 해나가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매 순간 욕구와 욕구 사이에 서서 선택하게 했고 그렇기에 삶 전체를 드러내게 했다.

 

해결책은 있다고 했다. 자신을 진실로 돌아보는 일, 자존심을 누르는 일, 자신의 결점을 고백하는 일. 지난 시간 동안 이곳 다사랑중앙병원에서의 1, 4, 9단계 발표 그리고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회복하고자 만들어진 자조모임인 A.A.에서의 모든 과정은 끊임없이 이 세 가지를 하게 했다. 오늘 하루만을 소중히 살아가라 했고,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말라 했다. 이렇게 단순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자꾸 잊어버리고 뒤로한 채 내 욕구대로만 살아가려 했던 나는 그랬기에 10여 차례를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잊지 않고자 한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빛을 선택하려 한다. 오늘 하루만을 소중히 살아가고자 한다. 그럼에도 부족한 나이기에 기도에 매달려야 할 듯하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무엇보다 제발 오늘 하루만큼은 술이 아닌 회복의 길을 선택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