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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회복수기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분들의 생생한 회복 경험담입니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통해 새 삶의 희망을 찾으신 환자분들의 진솔한 회복 수기가
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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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깨달음 뒤 찾아온 행운 가득한 인생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25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8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참가상]

 

깨달음 뒤 찾아온 행운 가득한 인생

 

○○

 

안녕하세요? 때는 20141124일 일요일 점심쯤, 딸 둘이 찾아와 밥을 사준다며 차에 태워 데려간 곳이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다사랑중앙병원이었습니다. 애들이 날 입원시킨다더니 그날이 오늘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이른 새벽부터 해장술로 소주 2병을 먹었습니다. 그게 나의 마지막 술이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보호사 두 명과 함께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가슴 속에는 무슨 놈의 분노와 설움이 가득 차 있던지 자식들도 미웠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병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뇌는 이미 다 망가져 글씨는 지렁이 기어가는 것처럼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쓰고, 교육을 들어도 다음날이면 다 잊어버리고···. 참 한심한 병원 생활이었습니다.

 

검사 후 병원에서 내린 병명은 간경화와 알코올성 간질이었습니다. 어느 날 점심 배식을 받으려고 병동에 줄을 서 있다 저도 모르게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병원은 난리가 났었습니다. 환우들은 그런 저의 발과 다리를 주물러줬고 보호사 선생님은 제가 발작을 하니 응급처치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깨어났습니다.

저는 다사랑중앙병원에 오기 전인 2013, 뇌졸중으로 큰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약 두 달 정도 재활치료를 받고 나서야 간신히 지팡이에 의존해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위암 말기라 암 센터에서 항암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퇴원 후 저는 4~5개월 동안 열심히 운동했고 덕분에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조금씩 돌아오니 뇌에서 또다시 술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캔 맥주 하나 정도야!’ 우습게 생각하고 마시기 시작한 술이 점점 무한정 들어가더니 결국엔 멈출 수 없는 중독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20147, 남편은 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몇 개월 동안 술만 마시며 살던 저를 걱정한 딸들은 여기저기 병원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곤 그해 11, 다사랑중앙병원에 저를 입원시켰습니다. 저는 딸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때는 너무 서운한 마음이 커 가슴 한구석에 딸들에 대한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갔습니다. 그러다 교육을 받으며 정신이 조금씩 안정되자 제가 많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일 먼저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알코올이 대물림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9살 때 저는 아버지가 피를 토하시며 돌아가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 맞아! 알코올 중독은 무서운 병이야. 나는 우리 딸들한테 이런 병은 대물림하지 말아야지하며 제 자신과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교육도 듣고 A.A.단주모임도 다리품을 팔아가며 열정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때로는 힘도 많이 들었습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왼쪽 몸에 자주 마비가 오는 등 많이 안 좋았기 때문에 저녁이면 진통제를 맞곤 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아플 때는 일요일엔 좀 쉬어야지하고 생각했지만 선생님께 게으름 피운다고 참으로 많이 혼났습니다.

병원 생활이 어느덧 2년이 지나고 퇴원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퇴원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녁 모임이 끝나고 병실로 들어왔더니 원무과 직원이 저를 불러 병원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으며 같이 있는 동료들에게도 창피했습니다. 저는 딸이 넷이나 있는 데다 딸들이 입원시켰으니 당연히 병원비는 냈으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저는 병원비는 신경도 안 쓰고 모임에만 열심히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원무과에서 병원비에 대해 전해 들은 후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더불어 퇴원을 해도 제가 머무를 곳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퇴원하기가 두려웠습니다. 저 자신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퇴원해서 딸들과 살게 된다면 갈등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고 선생님은 제게 한 가지 해결책을 제안하셨습니다. 그 제안은 아직 단주의 힘이 없으니 여성 공동체 생활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단주의 고비는 3년이니 그곳에서 힘을 더 보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단주하려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이기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 나만 생각하자그렇게 친정에 찾아갔습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얻게 된 2년간의 소중한 단주 시간을 헛되게 만들기 아까워 무조건 매달렸습니다. 도와달라고, 살고 싶다고, 열심히 하겠다고···. 친정 오빠는 저의 진심을 알았는지 병원비를 해결해주었습니다.

 

퇴원과 동시에 H여성공동체로 입소했습니다. 환우 여섯 명과 스텝들···. 저에게는 그냥 가정집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왠지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병원과 달리 밥도 해 먹어야 하고, 마음대로 눕거나 쉬지 못하고, 자유도 없고, A.A.도 못 가고···. 뿐만 아니라 그래도 나는 나라에서 손꼽는 다사랑중앙병원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더 아는 게 많아. 그리고 2년 동안 단주도 했는데···. 이 사람들은 나의 상대가 안 돼!’라는 교만한 생각에 빠져 그곳 동료들과 친해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3개월 동안은 많은 것이 혼란스러웠고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 걸까···.’하는 고민도 했습니다.

 

그러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저를 보러 시설에 오셨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저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껴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곤 선생님 원망 많이 했다고 왜 나를 이런 곳에 보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발을 묶어놨냐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선생님은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주시면서 제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홍쌤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이 다녀가신 뒤 저는 다 내려놓고 자신을 하나씩 깨달아가며 교만함도 버렸습니다. 그렇게 동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며 그곳 생활과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임했더니 하루하루 변화되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선생님께선 저에게 큰 힘과 사랑을 주고 가셨던 것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공동체 식구들에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공동체 식구들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이해받으려만 했지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배려심도 없었습니다. 저 혼자서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권위적으로 대하고, 자존심 상할까 우겨대고, 상대방을 내 잣대에 맞춰 바꾸려 했습니다. 그 사람들도 저처럼 병든 사람들인데···.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또 더불어 살아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공동체 생활도 1년이 되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많이 변화된 제 모습을 인정해주셨습니다. 원래 계약 기간은 2년인데 원장님께서는 이제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해서 잘 살라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임대주택을 힘들게 알아봐 저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저에게는 늘 행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자유의 몸으로 혼자 살면서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A.A.단주모임의 끈을 놓지 않고 후원자 선생님과 병원 메시지도 다니며 사회에 복귀한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제 주위에는 감사한 분들도 많고 감사해야 할 일도 많다는 것입니다.

 

제일 감사한 것은 저를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시켜 변화된 사람을 만들어준 가족과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사랑으로 저를 아껴주시고 제 삶을 다시 살아가게끔 큰 용기를 주셨습니다.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저는 몇 번이고 재발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평생 제 은인이시며 위대한 신이십니다.

 

이제는 새롭게 얻은 제 인생을 술과 바꾸지 않겠습니다. 끝으로 저 자신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