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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술 없는 평온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39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8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참가상]

 

술 없는 평온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

 

안녕하세요. 알코올 중독자 안양 박입니다. 저는 8남매 중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19살이 되던 해,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그다음 해에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사랑도 사라졌습니다.

 

외로움에 살던 21, 남편을 만났습니다. 사랑받기를 원했기에 쉽게 결혼 결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5남매 중 큰아들이자 장손이었기에 받는 사랑에 익숙했던 저는 결혼 후 사랑을 받기보단 큰며느리로서 베푸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사랑받길 원했던 저는 시댁으로 인한 모든 불만과 화, 분노를 안고 살아야 했고 결국 남편에 대한 분노가 점점 커져 남편이 하는 모든 일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했던 남편은 접대하거나 의논 없이 혼자서 결정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들어오는 남편이 미웠습니다. 그러다 둘째를 임신하면서부터 첫 술잔을 잡게 되었습니다. 술을 잘 못했기 때문에 첫 잔은 약한 칵테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밤마다 남편을 기다리며 한 잔이 두 잔으로 두 잔이 한 병으로 늘어났습니다. 결국 술을 가리지 않고 마시며 매일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의 원한과 분노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이혼을 결정한 37, 저의 술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매일 한 병씩 마셨던 술은 어느새 23일로 먹어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손 떨림이 오고 갈망감이 심해진 것은 물론 환청과 환시까지 발생해 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 더 술을 찾게 되었습니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 장취가 되어야만 잠깐씩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에 나타나는 이런 증상들을 소주 한 병으로 진정시킬 수 있었기에 날마다 술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도 안 하고 수중에 있는 돈으로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매일 술을 마시다 보니 통장 잔고가 0원이 되었습니다.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생각에 친정 언니에게 당뇨라며 아프다고 거짓말해 돈을 빌리려 했습니다. 언니는 택시를 타고 안양으로 오라며 함께 병원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돈만 빌리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차비도 없이 택시를 타고 언니를 만나기 위해 안양으로 갔습니다. 언니는 저를 내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당뇨가 거짓말이라는 것이 탄로 났고 알코올 중독이라는 진단이 내려져 의사 선생님께서 알코올 전문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언니는 다음날 저를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첫 입원을 했던 20067, 저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9주 동안 프로그램과 치료를 받아야 퇴원할 수 있다는 말에 더욱 화가 나 프로그램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히려 빨리 나가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 저는 병원 생활을 잘하는 척하며 1단계 발표 후 가족에게 퇴원을 요구했습니다.

 

퇴원 후, 큰언니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지만 저는 단주 모임을 무시하며 한 달도 안 되어서 다시 술병을 잡았습니다. 큰언니는 미쳤구나!”라며 저를 때리셨습니다. 때리는 것에 참지 못한 저는 엄마 같은 큰언니에게 네가 뭔데!”라며 화를 내곤 큰언니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술친구들이 있는 부천으로 갔고 큰언니에게 맞은 것과 A.A.단주 모임에서 회복하라던 말들이 떠올라 분노에 술을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그렇게 마시다 보니 얼마 후 환청과 환시가 다시 나타났고 이를 잊으려 술에 의지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더욱 미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술에 취해 들리는 환청에 알코올 중독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자는 생각이 들어 친구 집에 있던 회칼로 제 배를 찌르고 쓰러졌습니다. 눈을 떠보니 몸이 묶인 채로 가슴부터 배꼽까지 붕대로 감겨 있었고 몸부림을 쳐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내장 부위가 망가져 쓸개마저 떼어내는 대수술을 받았고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눈을 뜬 것도 대수술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 가운데부터 배꼽을 지나서까지 33바늘이 꿰매져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지만 저는 더 화를 내며 죽게 놔두지!”라고 소릴 지르고 거세게 몸부림쳤습니다. 그럴수록 술에 미쳤던 저는 술이 마시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런 순간에도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에 교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 측에 나라는 사람은 돈도 아무것도 없어서 입원을 못 한다고 설득하며 저렴한 병원으로 이동하겠다고 부탁했습니다. 교통사고 환자들이 많은 병원에 입원해 링거와 피고름 주머니를 차고도 몰래 나가 소주를 사서 마셨습니다. 한 달을 미친 정신으로 병원 생활을 했고 퇴원을 하는 순간에는 더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기쁨에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술의 늪에 빠졌습니다.

 

20098, 환청과 환시는 더 심해졌고 두고만 볼 수 없던 친정 언니는 저를 다사랑중앙병원에 재입원시키기로 했습니다. 만취 상태로 병원에 입원했던 저는 술이 깼지만 3주 후부터 전화 통화가 가능하단 말에 절망했습니다. 그렇게 3주 후, 술에 대한 갈망감 때문에 언니와 딸에게 퇴원을 요구했고 면회를 와달라고 했습니다. 면회를 온 딸은 엄마, 여기서 술을 끊고 나오든지 아니면 그냥 여기서 죽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고 화가 났고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었습니다.

 

다음 날, 제 바로 위인 언니가 면회를 왔습니다. 언니는 8층 로비에서 통곡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입원했을 때 9주 과정을 제대로 마치고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했으면 하나뿐인 내 동생이 또 이 병원에 안 왔을 텐데···. 언니가 미안해···. 이번에는 돈이 얼마가 들던지 9주 과정 끝까지 마치고 상담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언니의 말에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언니에게 사랑받는 동생이었구나···. 그동안 형제들에게 사랑받는 동생이 아닌 줄 착각하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의 한 마디와 언니의 한 마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몇 날 며칠을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흡연실에서 애꿎은 담배만 피우다 문득 한번 끊어볼까? A.A.후원자와 상담사 선생님과 함께 해 볼까? 100일 작전해보고 안되면 그때 다시 마시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병원 프로그램에 집중하며 상담사 선생님과 많은 상담을 통해 4개월간 병원 생활을 하며 9주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리고 퇴원 무렵, 다짐했습니다. ‘1단계에서 배운 듯 알코올에 무력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간절한 기도로 회개하면서 첫 잔을 피하고 A.A.모임 안에서 미친 정신이 아닌 본정신으로 살아 보리라이렇게 다짐 또 다짐하며 100일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그동안 제가 개차반처럼 살며 가정을 풍비박산 내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던 것에 대해 반성했습니다. A.A.모임에 나가 습관과 행동, 생각을 바꾸고 저의 결점을 찾아 이를 인정하며 한 단계씩 실행하다 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화나 분노가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변해가는 제 모습에 언니와 아이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제야 ! 내가 변해야 하는구나! 무슨 일이든 술로 도망가지 말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병원 프로그램과 A.A.모임의 단계들을 적용하며 모임 안에서 기적 같은 회복을 경험하게 되면서 술 없이 첫 잔을 하는 나, 해결책을 찾는 나, 직장을 가질 수 있는 나로 변화했습니다. 더 이상 화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 하루하루가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2년 단주 기념일, 저는 딸에게 분노를 토해내며 딸의 잘못했다는 말이 듣고 싶어 교활하게 술을 이용해 겁을 주려다 한 잔을 마시게 됐고 그렇게 단주가 무너졌습니다. 하루 마신 술 때문에 2년 동안 힘겹게 살았던 시간이 무의미해졌고 저는 A.A.모임 멤버 선생님들의 메시지를 위로 삼아 12단계 프로그램을 다시 되새겼습니다. 정말 절실히 엎드려 1단계인 알코올 앞에 무력함을 인정했습니다.

 

술 없는 평온함을 경험한 저는 자신을 점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평온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이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서로 사랑할 줄 아는 가정으로 변화된 삶에도 감사합니다. 알코올 치료와 12단계가 단주의 길이라 생각하며 다사랑중앙병원의 치료진 선생님들과 A.A.모임 멤버들께 감사합니다. 알코올 중독 안양 박은 단주뿐 아니라 온전한 삶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