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열지 않음

다사랑중앙병원

전국 최초 3회 연속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전문병원 다사랑중앙병원

생생다사랑

  • home
  • 생생다사랑

환자회복수기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분들의 생생한 회복 경험담입니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통해 새 삶의 희망을 찾으신 환자분들의 진솔한 회복 수기가
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환자회복수기는 회원가입 후 로그인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이제야 당신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09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8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장려상]

 

이제야 당신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

저는 19598월 아들 귀한 집안 4남매 중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위로 누님이 여섯 분 아래로 여동생이 한 분인지라 저에겐 고모님이 일곱 분이나 계셨습니다. 어림짐작해 봐도 제가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해가며 의존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고 그런 모든 의존적 사랑이 제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회복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단돈 10만 원을 들고 결혼을 한답시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성인이 되었어도 결혼 문제를 포함한 모든 것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부모님께 의존했습니다. 1983년 추석, 어머니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게 되었으며 각자 울산과 서울에 거주했었기에 만남보다는 편지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편지를 받은 날 서로가 답장하게 되면 일주일에 두 번을 받고 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1년 반쯤 지날 무렵 아내가 임신하게 되어 양가 부모님들이 서둘러 19855월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부모님이 울산에 신혼집을 얻어 주셨고 그해 10월 딸아이도 건강하게 출산했습니다. 저는 "단지 술을 좋아할 뿐이다"라는 말을 앞세워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기분이 좋으나 나쁘나 항상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들 문제가 내 것인 것처럼 여겨 항상 가정보다 그들이 우선 순위였습니다.

 

술 문제가 심각하게 진행되던 40대가 넘어가면서 회사에 무단결근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닥쳐올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을 외면하며 장남이니 부모님을 모시려면 어차피 서울로 올라갈 것이라는 핑계를 대고 마치 당연한 것처럼 자신 있게 사표를 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일하면서도 가정을 돌보기보다는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습니다. 군대생활과 지방 직장생활로 인해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니 너무나 반가워 한 잔 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무능력한 경제력까지 더해지자 아내와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술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고 쓸데없는 자존심에 언어폭력과 폭행을 서슴없이 행하면서 모든 것에 무기력해져만 갔습니다.

경제적 불안감과 잠을 안 자며 술주정하는 저를 견디다 못한 아내는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내가 절대로 제 곁을 떠날 수 없을 거라 굳게 믿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중학교 1학년인 딸이 있었기에 더욱 확신했습니다. 법원에서 소송에 관한 편지가 오고 나서야 저는 두려움에 떨어가며 이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1년 반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제 어머니의 강력한 제안에 아내가 아이들의 양육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어린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가느냐!’ 원망하며 때로는 자책도 해가면서 술에 더욱 의존해가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늘 아내를 원망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어머니는 외로워서 그러는가 보다하며 저를 안타깝게 지켜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술에 더욱 지쳐가던 중 2번째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 합의를 했지만 인사 사고에 뺑소니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이에 분노해 술의 양은 더욱 늘어만 갔고 보다 못한 가족들에 의해 2006년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때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한숨으로 나날을 지내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뼈저린 고통만을 안겨준 술에서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지긋지긋한 세상이지만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에 누구보다도 단주의 열망을 갖고 병원의 모든 프로그램에 집중했습니다. 개방 9주 수료 후, 퇴원해 A.A.모임을 받아들이고 사랑과 관용의 원칙을 통해 회복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단주가 1년 반쯤 되었을 때 후원자 선생님의 제안으로 아이들 엄마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되어있는 여자에게 보상한다는 것이 또 다른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기적 결점으로부터 자유로운 삶과 회복을 위해 보상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편지로나마 과거의 잘못된 행동들을 반성하는 글을 썼습니다. 아이들 엄마에게 술을 마시며 고통을 주었던 내용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용서를 청하는 장문의 편지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가 아들과 연락을 하고 있었기에 아들 편으로 편지를 보내며 아이들 엄마의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우연히 메일을 열어 그 편지를 읽었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미친놈. 이게 보상한답시고 쓴 편지냐"하며 자책했습니다. 단주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그때는 아마 용서를 청하는 최고로 멋진 글이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겉으로 보이는 상처만 생각했지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까지 헤아릴 힘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뱃속으로 낳은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피눈물 나는 고통과 들어주면 안 되는데 더 큰소리로 화를 낼까 두려움에 떨며 들어줘야만 했던 가슴 속 고통을 그때는 생각조차 못 했었나 봅니다.

 

딸의 결혼식 청첩장에 엄마의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 여동생을 통해 알아보니 중학생이었던 딸은 아빠의 술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고 두려워 이혼을 찬성했지만 아빠가 회복하게 되면 네 식구가 다시 모여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답니다. 그 때문에 엄마가 다른 남자에게 가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받은 적이 없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 딸의 마음 속에는 엄마라는 존재가 남아있지 않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저는 술 때문에 천륜으로 이어진 모녀지간마저도 의절하게 만든 용서받지 못할 인간이었다는 생각에 딸에게 위로 한 마디 못하고 그저 흐르는 눈물만 닦으며 용서를 청했습니다

 

10월이면 손주를 보게 되고 단주 10여 년이 되자 용기가 나 이렇게 다시 편지를 써봅니다.?

당신께서 이 글을 읽어볼 수는 없겠지만 가슴으로 용서를 청해봅니다. 당신의 기도에 은총을 입어 중학교 다니던 딸아이는 결혼해 10월이면 손주를 보게 되었고,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은 군대를 제대해 열심히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사회인이 되어있습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는 지금 하루하루 행복합니다.

 

저는 3년여 전 모임 안에서 만난 회복 중인 선생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고통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위대한 힘께서 주신 축복에 항상 감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는 모임에 있는 여자 멤버 선생님들을 하나하나 경계하기 시작했고 이에 고통스러워하며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분명 성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회복해 나가야 하기에 그녀들을 여자가 아닌 함께하는 회복 멤버로만 볼 것이다라고 주장했고 그녀에게 변화를 요구하며 때로는 큰소리까지 쳤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뜻과 달리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만 갔고 결국 맥이 빠지고 실망이 커져 제 가슴속에는 불신만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모임의 협심자와 후원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면 안 하면 되잖아?" 라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저에게 와 닿았습니다. ?내가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면 간단한 것을. 그녀처럼 단주 3년쯤 일때의 저는 어떤 모습이었나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경험담을 판단하면서 저런 것을 경험담이라고 하느냐 떠들며 큰소리쳤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제 말이 맞다며 아직 받아드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준비가 안 된 그녀에게 큰소리쳤던 제 모습은 술만 없었을 뿐이었지 과거 이기적 행동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녀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아직 없었던 저 자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나의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과거 당신에게 했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런 행동에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주장했겠지만 다행인 것은 협심자와 나누고 후원자와 나누면서 저의 결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점 제거에 용의를 가지면서 한 걸음 성장할 기회를 주신 위대한 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저의 결점들을 나누면서 위대한 힘께서도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저는 단주 10, 그녀는 단주 4년을 바라보며 모임과 프로그램 안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하며 조금이나마 진심 어린 마음으로? 용서를 청해봅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