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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단주로 얻게 된 감사한 하루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474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8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8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장려상]

 

단주로 얻게 된 감사한 하루

 

○○

안녕하세요. 회복 중인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20147월 말.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날짜는 도무지 기억에 없는. 늘 마셔 왔지만 작정을 하고 술판이 시작되었던 그날. 매일 죽음 앞에 있었던 술만 마시던 그때에 저를 돌아봄에 있어 진실한 마음을 주시길 간곡히 청하며 이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늦도록 술을 마실 생각으로 아이들을 그 가게 안 집으로 보내고 술을 마시러 다녔던 식당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벽녘 아파트로 돌아오던 그 길에서 이상했던 기분. 그날은 아침 일찍 식당에 일하러 나가면서 유독 옷을 잘 입은 듯 날씬해진 것 같기도 하고, 집도 깨끗하다 여겼습니다. 그렇게 정신이 희미해져 가고 있음을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늘 그렇듯 식당은 아침 장사부터 정신없이 바빴고 뚝배기를 나르느라 상을 치우느라 계산을 하느라 저는 이리저리 동동거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몰래 마시는 해장술을 마시지 못한 탓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저를 눈엣가시처럼 여겼지만 잘 참고 넘겨오던 한 아줌마를 물고 늘어지며 미쳐가고 있던 저도 생각이 납니다. 지긋지긋하게 듣고 자란 욕이 싫어하지 않겠다 다짐해놓고 어디에서 그 욕이 쏟아져 나오는지 가슴은 터질 것 같고, 식당 안에 그 많은 사람이 저에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세상 억울한 사람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며 그렇게 그날 8년을 일한 직장에서 끝내 정신줄을 놓아 버렸습니다.

 

그러다 죽는다. 일 그만둬라고 하시던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벌이라 하기엔 저는 너무도 가혹하고 비참하다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곰소에서 마트 일을 하던 작은 오빠가 엄마에게 다급한 연락을 받고 왔었습니다. 오빠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몸서리를 치고 엄마는 지금도 오빠한테 잘해라. 너 살린 사람이다라고 하십니다.

 

식당으로 가야 한다는 저를 오빠는 가까운 종합병원에 데려갔고 저는 뛰쳐나왔다는데 토막 기억뿐입니다. J병원으로 가던 중 저는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려고 하고 창밖으로는 선명하게 보이던 식당에 오던 낯익은 얼굴들.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를 반복하던 제 기억 속 J병원은 참담했습니다. 죽기 직전이었고 미치기 직전이었지요.

 

침대 사방으로 둘린 칸막이, 보고 또 보던 벽시계, 침대 옆에서 기계를 조작하는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모르겠는 누군가, 쫓기는 기분, 죽도록 기다린 남편, ‘도망쳐야 한다, 침대 어디쯤 숨어야 하나, 의자에 앉아 있는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옷을 벗어야 할 것 같은데하는 생각들. 술을 목구멍까지 차고 넘치도록 마시고 마신 끝은 이러했습니다. 그렇게 미쳐버리거나 그렇게 죽거나.

 

큰 굿을 하면 깨끗이 낫는다는 엄마의 말을 따라 저는 퇴원 후 굿을 했습니다. 그러나 술 생각뿐인 저에겐 소용이 없었습니다. 떨리는 손을 감추지 않아도 되고, 씹지 못한 지 오래였으나 삼겹살 오돌뼈를 술 한 잔에 오물오물 삼키는 일을 안 해도 되고, 죽을 자리인지 살 자리인지도 모른 채 그 일도 못 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 안 해도 되고, 한 잔만 하려고 그 식당에서 버티고 버티는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그 식당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술 마셔도 된다. 술은 취하라고 마시는 거지. 실수도 하는 거야하며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셨습니다. 열어놓고 제대로 장사 한번 못해본 가게에서까지 저의 술에 미친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밥 한 톨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게 되었고 물도 마시질 못했습니다. 머리 한 번 감으려면 이리저리 매번 고꾸라지는 통에 씻지 못했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옷에 실수한 것은 손으로 꼽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겨우 집에 올라가면 현관 문턱을 넘지 못해 넘어지고 머리를 계속 방바닥에 부딪쳐 어린아이들이 이부자리를 펴놓았습니다.

 

그 이불에서 썩은 땀을 흘리며 한 잔만 더 마시겠다고 손목을 긋기도 하고 이리 살아 무엇 하나 죽어야 한다며 수면제를 모아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잔만 더, 한 잔만 더 마시고 죽자는 생각 때문에 약을 털어 넣을 정신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밥을 어찌 먹는지, 학교에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시켜 먹는 것은 싫다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하고 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내가 미쳤구나.’ 하고 미친 나를 누가 볼까 집안으로 숨어들고 커튼을 쳤습니다. 술에 애원하고 술에 의지하고 술에 매달리는 저는 술거지였습니다.

 

죽을 것만 같아 마셨는데 죽지 않고, 죽지 못해 마셨는데 죽을 거 같고. 마셔도 죽겠고 마시지 않아도 죽을 것 같았던 20158월 말, 그날도 술에 절어 베란다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 문득 죽겠구나.’라는 생각과 죽어도 곱게 죽지는 못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처럼 그렇게 죽을 것을 생각하니 나는 좀 깨끗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어눌해진 입을 꼭꼭 닫고 살던 제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병원 가야 할 거 같아하고 말입니다.

 

병원 가기 전날,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저는 시내로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 저는 집에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결국 집 근처 무인 모텔에서 마지막 잔을 들었습니다. 씻고 싶었던 제 마음과 달리 씻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닥에 넘어져 일어날 수가 없었고 바닥이 돌고 돌았습니다. 아이들이 가까이 있는데 한 번 만져 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죽겠구나 싶었습니다. 세상이 돌고 저도 돌았습니다. 서 있을 수도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고 머리를 들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고 제멋대로 휘어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산송장이 된 몸뚱이로 어린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 갔습니다.

 

남편은 하던 일을 정리하러 갔고 아이들만 있는 집에는 시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저는 친정엄마와 병원에 있었습니다. 엄마가 해다 주신 미역국과 생채를 먹은 기억이 있지만 그 뒤로 찾아온 금단은 참담했습니다. 죽지 않았다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모습, 신경쓰여 미칠 것만 같았던 앞 침대 옆 우산. 그러다 정신을 놓아버리고, 옷을 입히면 계속 벗으려 하고, 병원에 불을 내려 하고, 응급차 안에서는 난동을 부리고, 살아있는지 숨은 쉬고 있는 건지 고통스러운지 아픈지. 저는 그때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할 수 없었고, 기억도 없습니다.

 

저는 응급차를 타고 남편은 그 뒤를 따라 영광으로 갔으나 입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광에서 김제로 가는 동안은 기억에 없고 의사 선생님을 만난 짧은 기억만 있습니다. K병원에서 며칠 만에 1인실에서 나왔다는데 그 며칠에 대한 기억 또한 없습니다. 입원한 지 한 달이 되어 갈 때쯤, 명절이 되어 외출하였고 남편과 있는 차 안에서 충전기 줄을 목에 감았습니다. 이미 미친 줄 모르고 미칠 것 같아 그 병원은 가지 않겠다며 통제할 수 없던 저를 남편은 친정에 데려갔습니다. 남편은 광주에 있는 알코올 전문병원을 알아보았지만 병실이 없었고 그렇게 알아본 곳이 의왕에 있는 다사랑중앙병원이었습니다.

 

온 식구가 저를 입원시키려 친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동생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날, 어렴풋이 시골에 있는 아이들이 생각났고 보고 싶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하는 2015930, 저는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는 의왕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사랑 많으신 그분께서 보내 주신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며 술 마시지 않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정신이 병든 사람이라는 것도, 제가 술 마시는 병에 걸렸다는 것도, 제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것이 부모의 탓도 그 누구의 탓도, 제 탓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위대하신 그분의 도움 없이는 술 없는 하루를 살 수 없다는 것까지. 술 앞에 저는 백전백패하는 한없이 무력한 사람임을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서 받아들이고 인정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소중한 병원 생활이 하루하루 흘렀습니다.

 

2층에서 했던 온전한 생활시간, 8층에서 했던 회복하시는 선생님의 12단계 12전통, 1층에서 했던 상담사 선생님의 에니어그램, 원장님의 재발 예방 교육과 인지행동치료, 3층에서 했던 물리치료 그리고 8층의 운동실, 아침 명상시간, 한방 선생님의 침 요법, 산책시간, “경험담부터 읽어 보세요라는 말을 듣고 펼쳐 보았던 빅북, 시골에서 엄마, 조카 그리고 남편과 함께했던 발표 시간, 처음 참석한 원내 A.A. 모임, 토요일 자조모임, A.A.멤버 선생님들의 메시지, 태어나 처음 배운 탁구까지. 그렇게 제 회복의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보고 가슴이 벅차고 뭉클해져 이내 볼을 타고 내리던 눈물을 기억합니다. 감정이 살아나고 다리에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입원 9개월을 넘기며 힘들었을 남편의 마음을 깨닫고, 술 없이 버스를 타고,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고, 더위와 추위를 느낄 때쯤이었던 2016711일 저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경제적인 문제로 퇴원을 하게 됐습니다. 상담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남편에게 모임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부산에 있는 A.A.모임을 다녀오고 다음 날인 월요일에 퇴원했습니다.

 

퇴원 후 짐만 집에 가져다 두고 저는 중곡동 모임으로 향했습니다. 술 마시는 병에 걸린 제가 술 마시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 수 있는 곳은 모임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지금도 모임을 나가는 것에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술 없이 사람답게 하루하루 살 수 있는 힘이 모임 안에서 사랑 많으신 그분의 사랑을 닮아 가고자 하는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다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술 없이 사는 일상과 사람답게 사는 삶이 제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늘 상기하며 익숙하지 않은 많은 일들을 그분의 보살피심에 맡기고 그분만을 의지하며 그분의 힘으로 살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또 믿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술 마시지 않는 것. 그 하나를 제 모든 일의 시작에 두고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앞을 향해 갑니다. 맑은 정신으로 미용 기술에 도전하였고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2017년도를 열심히 보내고 올해 초에는 이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훌쩍 자라 지금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 아이들도 저도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술만 마시던 바보 엄마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맑은 정신인 지금이 저는 행복합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저는 첫잔은 죽음에 이르는 독약과도 같음을 잊지 않으려 매일 모임에 갑니다. 멈출 수 없는 그 지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기에 매일 모임에 참석해 도움 받으며 살아갑니다.

 

몸과 정신이 쇠약할 정도로 미치도록 일만 하기도 죽는다고 해도 한없이 술을 마시기도 해보았고 미쳐 죽음의 문턱에 서 보기도 했습니다. 죽도록이 아닌 적절히 천천히 여유롭게 사는 삶을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아이들과 남편과 형제들과 사람들과 관계하고 소통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 많으신 그분이 함께 하시는 모임 안에서 술을 마셨던 때 저의 묵은 감정과 마시지 않는 오늘 하루의 감사에 대해 경험을 나누고 꿈과 희망을 나누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상담사 선생님을 통해 살고 싶은 저를 만났고 A.A. 모임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고 그 힘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갑니다.

 

딱 한 잔만을 고집하고 고집하다 술만 마시는 짐승처럼 살아 보았습니다. 술 없이 딱 오늘 하루만 살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기도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랑 많으신 그분에게 저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저의 병을 기억하게 해주는 모임을 만나 살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옷차림과 표정으로 학교에 가고 오는지 볼 수 있는 오늘 하루를 살게 해주심에 깊이 감사합니다.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제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게 해준 병원을 만나 치료받을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하고, 살고 싶은 저를 만나게 해주심에 감사하고, A.A.모임이라는 갈 곳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어 감사합니다.

 

이 순간, 깨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술 마시지 않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저의 경험을 읽어 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