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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신이 내게 주신 두 번째 기회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14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9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참가상]

 

신이 내게 주신 두 번째 기회

 

○○

 

오늘 하루도 회복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신이 내게 주신 두 번째 삶의 기회인지도 모른다. 나는 알코올을 여자보다도 더 사랑했었고 가족보다도 더 아꼈다. 오죽했으면 이성을 만날 때에도 첫 마디가 술을 좋아하냐는 말이었을까... 과거의 나는 술에 살고 술에 죽는 술꾼이었다.

 

1980년대 1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는 논일을 하시다 춤을 추며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들이란 이유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시련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젊으셨을 때부터 알코올중독자였고 폭력적인 삶을 사셨다. 어머니를 선으로 만나셨을 때는 잠시 그런 행동들을 멈추어 결혼하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결혼 후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첫 기억은 술에 만취되어 집안을 부수고 가족들을 폭행하는 장면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거의 매일 같은 상황들의 연속되었다.

 

아버지의 폭력과 음주, 집안 물건을 부수는 일은 거의 삼위일체였다. 술을 드시면 화를 내셨고 화가 나시면 나랑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도 남자라는 이유로 나는 했고 이유 없이 잘못을 빌어야 했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시면 반찬이 이게 뭐냐느니, 이건 왜 더럽냐며, 이게 왜 여기에 있느냐며, 이런 걸 왜 사냐며, 방이 지저분하다는 등의 이유로 깨끗한 집안을 도리어 엉망으로 만들곤 하셨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가 매일 술을 드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가는 게, 집에 있는 게 항상 싫었다. 저녁이 되고 일이 끝나 돌아오신 아버지의 초인종이 눌리면 화목했던 집안 분위기가 금세 싸늘해졌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 쥐죽은 듯 조용히 해야했다. 아버지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이러한 아버지의 음주습관은 내가 술을 빨리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첫 잔을 든 건 초등학교 4,5학년 때로 기억된다. 어느 날 아버지가 혼자 집에서 술을 드시던 중 적적 했었는지 아들이란 이유로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한다 합리화를 시키며 어린 나에게 술을 가르쳤다. 사실 가르쳤다기 보단 나를 본인의 술 상무로 만들었다. 그렇게 처음 먹은 술의 느낌은 쓴 화학약품의 냄새...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빨리 잠들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20여년이상 계속 된 나의 알코올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아마도 유전적인 요인... 그리고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보고 배운 아버지란 인물로 인해 성인아이가 되버린 나는 어렸을 때부터 화나거나 우울할 땐 몰래 집에서 술을 마셨고 점점 커가면서는 이것이 자랑인양 우쭐대며 마셔댔다. 조기교육의 힘이었는지 나는 남들보다 술을 잘 마시고 많이 마셨고, 항상 술자리 끝까지 마시고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술을 마시러 다녔다. 성인이 되고 어디든 갈수 있게 되자 Bar, 나이트, 단란주점 등 술이 파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니곤 했다. 오로지 술이었다.

그렇게 일찍 술을 마신 덕에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블랙아웃을 경험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신기해하기만 했다. 그냥 친구끼리 하는 웃긴 이야깃꺼리 정도로 여기며 당연히 많이 마시니 그런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길에서 쓰러지거나 하는 이상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블랙아웃이 길어졌다. 처음에는 10~20분 정도였던 것이 1시간, 2시간이 되었고 최근까지 술 마실 때에는 1, 2시간 마시면 3, 4시간 블랙아웃 상태로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점점 아버지화되었다. 언어도 난폭해지고 직설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 다행히 폭력적인건 거의 없었지만 1녀에 한 번 정도는 폭발하여 집안의 물건들을 던졌던 것 같다.

 

항상 술에 취해 있었고 술과 돈에 목이 말랐다.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해왔지만 거의 모든 돈이 술값이었다. 유흥비 탕진은 순식간이었다. 한 달 일해 하루 즐기는데 다 쓰고, 남은 20여일은 여러가지 핑계로 돈을 타서 집에서 술을 사먹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나중에는 더 먹고, 더 놀고 싶은 마음에 대출에까지 손을 대었다. 갚을 생각은 뒷전이었고 한 곳에서 받으면 그날 즐기고 다 쓰면 다음날 다른 곳에서 또 대출 받고... 그렇게 안 될 때까지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다가 감당이 안 되면 나 몰라라 했다. 돈을 받으러 집에 찾아오면 그 시간 동안은 밖에 나가 술을 마시거나 집에 아무도 없는 척 잠수를 탔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통장거래도 중지되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술만 마실 수 있다면...

 

그렇게 술을 마시며 무엇 하나 이룬 것도, 모은 것도 없이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자 불안과 불만이 점점 쌓여갔다. 투사가 심해져 날 이렇게 만든 건 아버지 때문이라고 가족들이 날 케어 못해서 이렇게 큰 거라고 합리화했다. 자기연민이 심해져 점점 술이 취하면 언성이 커지고 집에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받아주던 가족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쳐갔고 이내 갈등이 심해졌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뫼비우스 띠처럼 악몽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고 언어폭력까지 심해지자 20191월 초, 가족들은 나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켰다. 3개월 동안, 퇴원하는 전날까지 가족들과 싸웠다. 내보내 달라고... 입원해 있는 동안 오로지 나가면 술을 마실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퇴원한 당일 저녁부터 3개월 동안 못 먹었으니 이제는 마실 거라며 선포를 한 후 이틀 동안 잠이 들 때 빼고는 계속 술을 마셨다.

 

그러다 3일째 되던 날 갑자기 알코올 금단 섬망이 왔다. 살인충동과 자해충동이 심하게 왔다. 거의 실 한 가닥으로 나의 상태를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끊어지면 나는 이제 내가 아니게 될 것 같은 섬뜩한 공포가 머릿속에서 요동을 쳤다. 급하게 약을 찾아 먹고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서 안정을 취했다. 그 일로 난 큰 충격을 받았고 집에 혼자 있는 게 불안했다. 그런 일이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일이 나의 단주생활을 시작하게 만든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다.

 

다음날 스스로 알코올전문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고 입원을 했다. 처음엔 섬망의 공포가 사그라들 때까지 한 달 정도만 입원할 생각이었다. 스스로 단주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하나 배울수록, 알아갈수록 내 생각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이 아무런 정보도 없어 그냥 술만 안 마시면 되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나였지만 교육과 받아들임을 통해 단주해야만 하는 원동력이 생겼다.

 

분명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다. 단주와 회복에 대해 알면 알수록 쉽지 않은 길인 것 같다. 때때로 내가 왜 이래야 되지 하는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가족들에게 했던 행동과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한테 이야기한다. 다시 예전처럼 그렇게 살고 싶냐고...

이제는 알 것 같다. 나에게 술은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단주의 절실함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매시간 생각해본다. 그리고 병원을 통해 알게 된 A.A.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같은 뇌의 병을 앓고 있는 동지로써 같은 고통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니, 온전한 생활을 위한 변화와 단주를 실천하면서 살아갈 결심을 다시금 하게 된다. 위대한 것으로 향하기 위해 좋은 것을 포기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내 자신을 살아가며,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회복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