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열지 않음

다사랑중앙병원

전국 최초 3회 연속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전문병원 다사랑중앙병원

생생다사랑

  • home
  • 생생다사랑

환자회복수기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분들의 생생한 회복 경험담입니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통해 새 삶의 희망을 찾으신 환자분들의 진솔한 회복 수기가
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환자회복수기는 회원가입 후 로그인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2019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평범한 삶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60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9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장려상]

 

평범한 삶

 

○○

 

엄마, 나 정신병원에 보내줘응급실에서 눈을 뜨고선 엄마를 보며 제가 내뱉은 말입니다. 사실 어렴풋이 기억나 또렷하진 않습니다.

 

15살 때 홀로 중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제가 저희 집에서 가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저희 집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부모님이 다투시는 소리, 학교선배들의 폭행, 학교생활의 따분함 등을 이유로 저는 홀로 유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첫학기 끝무렵 저는 소주를 처음 맛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술에 무지했던 저는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은 채 종이컵에 가득 따라 몇 잔을 연달아 주는 족족 마셨습니다. 맛은 없었지만 필름은 끊기지 않았습니다.

 

18, 너무나도 추웠던 지방에서 유학을 하던 때였습니다. 홀로 외롭고 말도 잘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른 곳에서 방황하는 여러 명이 모여 한국말로 깔깔 대던 그 순간, 그 밤만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주말이 되면 홈스테이 사람들과 모여 술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일 그들과 깔깔대며 술을 먹고 싶었고 매일 외롭지 않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평일에도 룸메이트를 데리고 담을 넘어 저 혼자만 술을 마시고 취하고 학교에서 술이 덜 깬 채로 엎드려있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그때쯤 저는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이면 몸무게가 줄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거다!’ 싶어 밥을 먹지 않고 술을 마시는 날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술이 취하면 나간 정신으로 음식을 마구잡이로 먹고선 토를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토를 하고 자는 날이면 그 다음날 살이 찌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죄책감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었지만 토를 하지 못하고 술에 취해 잠이 드는 날이면 죄책감에 더 많은 양의 술을 먹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39kg가 되었음에도 더 마른 몸을 원했고 더더욱 살이 안 쪄야만 했습니다.

 

19, 매일 술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6시가 되면, ‘오늘은 또 어떤 친구를 만나야하며, 무슨 이유로, 어디 술집에서?’를 고민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술 마신 다음날이면 눈 떨림이 심해지고 입술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마비가 되어도 저는 그저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늦게 자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술을 한 잔 마시면 이 떨림과 마비가 풀린다는 것도, 그것이 금단이라는 사실 조차도 모르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어제 어떤 행동을 한지도 모르는 채로 오늘을 지낸다는 것, 어제 같이 술 마신 친구가 나에게 기억나느냐고 물어오는 것을 맨 정신으로 견딘다는 것, 또다시 6시가 되면 오늘은 술을 어떻게 마시냐를 고민해야하는 것, 오늘은 술 약속 없이 홀로 집에 들어가 맨 정신으로 잠에 드는 걸 걱정해야 하는 것, 부모님의 대한 죄책감을 매일 같이 안고 지내야 하는 것, 대학을 합격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 등등 이 모든 생각들이 저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게끔 만들었습니다.

 

술은 그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생각으로만 갖고 있지 않게끔 만들어 주었습니다. 술에 취해 들어와 갖고 있던 우울증 약을 다 뜯어서 먹었습니다. 다음날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몽롱한 상태로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게워내고 누웠습니다. 방 밖에 나와 같이 술 마시고 깔깔대며 웃던 홈스테이 사람들은 아침부터 분주했고 맨 정신에 들려오는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커튼을 쳐서 아침부터 깜깜한 방안에서 원하지 않던 모습으로 누워있는 제 자신이 슬펐고 그들이 미웠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냥 저 좀 죽여달라고.

 

20, 운이 좋게도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기뻤습니다. 매일 같이 술 먹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깨지고 이런 저의 모습이 부모님에게 늘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는데 좋은 대학을 합격함으로써 죄책감을 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술은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덜 취한 상태로 들어와 술을 더 마시고 싶어 대학 안에 있는 온갖 슈퍼를 돌아다니고, 취한 채로 오토바이를 끌고 술을 사서 들어오다 넘어지고, 눈뜨면 멀쩡한 기숙사 침대를 두고 옆에 술병이 굴러다니는 끈적한 바닥 위에 누워있고, 친구에게 내가 술을 살테니 제발 나와 달라고 부탁하고, 스케줄이 빡빡하면 술을 안마시겠지...하며 여러 동아리를 가입하고, 동아리 회식 때 술에 취해 아무 말이나 내뱉고 창피해 동아리 참석을 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저녁이 되면 술을 마시러 나갔습니다.

 

22, 겨울방학이 되어 한국을 나왔고 어김없이 술을 마시러 나갔습니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알딸딸한 상태로 집에 들어갔고 저를 기다리신 아빠가 화가 나셔서 하신 말에 꽂혀 다시 한 번 가지고 있던 우울증 약을 모두 털어 넣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응급실이었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정신병원에 보내줘그렇게 처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만 세 번을 입·퇴원을 했습니다. 세 번 다 술을 마신 다음날 입원했습니다.

 

256, 술을 마시고 전화를 꺼버리고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또 다시 병원에 입원하자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택시를 타고 가며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병원 안에서 환자들이랑 친해져서 나와서 술 먹겠지...’ 온통 술 생각, 더 뻔뻔해지는 저 자신, 조금의 창피함, 수치심, 죄책감이 모두 사라진 저를 태운 택시는 다사랑중앙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알코올 전문병원이라는 글씨를 보고 올 것이 왔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입원하고 한 달을 힘들어 했습니다. 창밖을 보며 매일 울었습니다. 환의복, 식판, 수저, 젓가락, 보호사 선생님 하나하나 다 싫었습니다. 어쩌다 내가 여기 까지 왔을까. 다른 병원에서는 하는 일 없이 흰 벽을 보며 시계만 쳐다봤을 때와는 달리 그래도 수업시간이 있어 수업에 참석했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상담사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빠서, 이상한 애여서, 유별나서가 아닌 그냥 알코올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환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병원 생활이 더 이상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긋지긋해 하던 술, 조절해보려 온갖 수를 다 써본 술, 다른 20대처럼 평범하게 지내고 싶어 하던 나 자신, 제발 좀 죽여 달라고 차라리 죽을병에라도 걸려 어떤 고통이라도 괜찮으니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그때의 제 자신이 오히려 회복하겠다며 달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병원 생활을 마치고 AA모임에 매일 참석하면서 9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다사랑 AA모임에 참석 할 때면 사복입고 있는 제가 낯설기도 합니다. 많은 치료진분들이 저를 알아봐 주십니다. 든든한 저의 상담사 선생님도 늘 그 자리에서 저를 맞이해 주십니다.

 

다사랑중앙병원에서의 입원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제 인생에 있어 큰 변화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 가족이 저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 또한 이곳에서 보고 이곳을 통해 웃는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감사하게 찾아 왔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치료진 분들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것은 분명합니다.

 

다른 평범한 이들처럼, 평범한 20대처럼,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술 마시지 않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바라던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술로부터 받은 고통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