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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살얼음판 같던 내 인생의 버팀목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66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9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장려상]

 

살얼음판 같던 내 인생의 버팀목

 

○○

안녕하세요? 전 알콜중독자 김이라고 합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제가 결혼한지도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다가오네요. 저의 경험담을 쓰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 제 곁에서 같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저의 가족 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게 알코올중독 증상이 나타난 것은 군대 제대 후 대학교에 복학하면서 입니다. 해장술을 마시기 시작해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대학교 3학년 때에는 처음으로 정신병환자들이 있는 병원에 15일간 입원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내가 술을 좋아해서 마시는 건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중독이라는 말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마시는 술이 좋았고, 아침에 일어나 속이 불편해서 해장술을 마시면 속이 편해져 하루종일 마시고 깨고 마시고 깨고를 반복했습니다.

 

2016년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2019년도에 결혼하기까지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면 언제나 술이 옆에 있었습니다. 같이 있을 땐 적당히 조절해서 마셨지만 헤어진 후에 혼자 자취방에 들어와 만취가 될 때까지 마시며 잠드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201912월 결혼식 날, 그전까지 계속된 음주로 주례선생님 앞에서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머리가 흔들렸습니다.(지금 생각하면 술을 안먹어서 나타났던 증상인 것 같음) 어찌보면 틱 걸린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일생에 단 한번 뿐인 행복한 순간에 저는 긴장과 땀으로 온몸과 마음은 망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후로도 저는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계속된 음주로 직장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술에 취해 방에 누워있던 어느 날, 아내가 알코올중독을 고치는 병원이 있는데 한 번 입원해서 고쳐보겠냐고 제안했습니다. 매일 술에서 지내는 것이 제 자신도 너무 싫었기에 그렇게 하자고 하여 저는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거기서 알코올중독이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내가 알코올중독자구나...’라고 느끼며 병원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단주 모임이 두 종류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주 동맹과 단주 연합. 이 두 종류인데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단주 동맹은 강압적으로 넌 중독자니 무조건 인정하고 단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단주 연합은 스스로 중독자임을 깨닫고 단주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제가 입원할 당시 남아있는 단주 동맹 병원은 2개 정도였고 나머지는 연합이라는 것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입원했던 병원은 단주 동맹 병원으로 입원해서 여기는 병원이 아니다. 교도소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짜여진 스케줄로 저녁마다 병원 내에서 자체 모임을 하며 12단계, AA약속, 단주방법 등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암기테스트를 했습니다. 못 외웠을 경우 신고있던 신발이 날라 왔으며 욕이란 욕을 먹어 자유시간에는 암기를 하기위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할 경우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며 금지하였습니다. 병실마다 카메라가 설치돼있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받았습니다. 누가 그런 곳을 병원으로 생각하겠습니까? 처음이 어렵지 저의 가족은 제가 퇴원해서 다시 술을 마시면 여지없이 다시 저를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마시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 퇴원과 동시에 다음날 재음주를 하기도 하였으며 반복된 재음주로 계속해서 병원에 입퇴원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술을 마시면 여관이든, 현장 숙소든 찾아와 술에 취해있는 저를 업고서 차에 태워 병원으로 입원시키시는 힘겨운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반복된 입퇴원에 어느정도 병원생할에 익숙해지니 제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살아온 날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눈물도 흘리고 제 자신에 대해 반성도 하며 중독자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의 병원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2002년도 후반에 퇴원하면서 다시는 재음주를 하기 싫어서 건설현장관리직을 그만두기로 결심했고 대리운전을 시작했습니다. 1년 정도 대리운전 생활 후, 재대로 된 직업을 찾던 중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건설현장의 관리직으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20041, 큰 사고를 당해 8개월 간의 병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리운전 생활과 병원 입원 기간 동안 단주를 해서 그런지 조금씩 술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모임은 참석하지만 참으로 힘든 생단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전 생단주를 하면서 단지 술 마시지 않는것에 집중하며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모든 짜증과 마른 주정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습니다.

 

5년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한 선배님께 단주하면서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고 다시 재발하게 만드는 것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왜 그럴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생단주 기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엔 술만 마시지 말라던 가족들의 요구가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술 한 잔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래서 재발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단주 10년이 좀 안된 시기에 일하는 현장 환경으로 인하여 술자리를 자주 접하게 되었고, 1차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2, 3차로 이어졌습니다. 그 속에서 전 잠시 잊었던지 조절망상에 사로잡혀 몇날며칠을 고심하다 다시 음주를 시작하게 되었고 약 6개월의 조절음주 끝에 다시 병원으로 실려 오게 되었습니다.

 

한 번 조절망상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먹게 된다는 단주 선배님의 말씀이 다시금 생각나는 때였습니다. 그때 다사랑중앙병원을 알게 되었으며 이 병원은 처음 입원했던 병원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재발을 시작한 저는 약 5년이라는 시간동안 1년에 한 번씩 재발해 병원을 들락날락 하게 되었습니다. 단주를 오래하다 재발이 시작되면 다시 재발되는 시점이 조금씩 앞당겨지고 술의 양도 점점 줄어든다는 선배님의 말씀을 몸소 느끼며 체험한 시간들이었습니다.

 

2년전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할 당시 저는 모든 것을 다 잃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던 저에게 단주하며 살아갈수 있다는 용기를 주던 가족들도 지쳐갔고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은 아버지, 엄마, 아내, 아이들이 생활을 한다고 해도 억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끝내는 마지막 병원 퇴원하기 전에는 이혼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퇴원을 시켜달라고 미친놈처럼 무조건 조르며, 때를 썼습니다. 그렇게 퇴원 준비를 마치고 퇴원하려는 날 아침, 저는 내 마음 하나도 다잡지 못하는데 나가서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이고, 말을 한들 내 말을 믿어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다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결심을 하고 그 모든건 다 내 잘못이다.’라는 생각으로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끝내 혼자가 되더라도 남은 인생을 한 번쯤은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9주간의 개방생활을 마치고 퇴원을 하였습니다. 퇴원과 동시에 전 장모님에게 찾아가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용서를 구했지만 그대로 쫒겨 났으며, 그 순간 잘못하고 죄송하다는 죄책감보다는 오히려그래. 내가 2년이고 3년이고 단주를 하고나서 당당할 수 있을 때 처갓집 식구들을 봐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아내나 아이들은 내 옆에 없을거야!’라는 생각과 다짐을 했습니다. 그렇게 퇴원 후 바로 다니던 직장에 복직하여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술을 멀리하며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스스로 만족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가족들이나 처갓집 식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제가 단주 할 수 있는 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2년은 정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제대로 된 단주생활이구나...’라고 느낄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힘들고 지친 시간들도 있었지만 제가 다니는 모임의 선배님들과 가족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하루하루 잘 버티며 살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맑은 정신으로 문제점에 있으면 문제를 회피하기 보다는 처리를 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장남의 입장에서 하나 둘 해결해나가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에 대한 행복과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기에 앞으로도 이런 시간들이 저에게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가 나가는 단주 모임은 비록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 비공개 모임이지만 회원들의 단주 년수나 나이를 보면 어느 모임 못지않게 힘도 있으며, 단순히 술만 마지지 않는 모임이 아니라 나로 인해 피해를 본 가족이 함께 살아 가는, 단주 생활을 목표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임입니다.

 

중독자가 아닌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는 이유가 결혼 생활을 못해서 이혼을 한다고 하는데 중독자들은 술은 참을 수 있어도 단주 생활을 못해서 자꾸 재발을 하게 된다.”는 선배님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 아내 또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접하게 되면서 지금은 행복한 단주 생활을 이어가는데 저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하루하루 살 듯이 아내 또한 하루하루 똑같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단주 생활을 이어가는데 힘들고 지치듯이 아내 또한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내는 항상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저의 단주 생활이 지금 자기가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는 밑걸음 이라는 말과 함께 나의 단주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 시간은 없다며 항상 저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며 걱정해줍니다. 물질적인 다른 무엇보다 저의 단주가 아내에게 힘이 되고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서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지금 제가 나가고 있는 단주모임 또한 저에겐 정말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는 아주 중요한 모임이며 장소입니다. 퇴원하기 전 병문안 와 다시 모임에 나와라. 일어나서 손털고 함께 다시 시작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용기를 내고 모임에 나와라.”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2년 전 퇴원 당시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며, 지금 어디에선가 홀로 사방을 방황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재발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술은 언제든 마실 수 있지만 그 술을 마시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더 강해 이런 마음은 제 단주 생활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행복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알코올중독자 김입니다. 오늘 하루도 술 마시지 않고 맑은 정신에 하루 생활을 마감할 때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며, 내 옆에 항상 나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대해 큰 행복과 큰 힘을 얻습니다.

 

많은 시간을 망설이다 회복수기를 작성했습니다.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다 적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내 자신이 알코올중독자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용기를 얻어 인생이 더 살아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 내 자신이 누구인지 한순간이라도 잊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작성하며 다시 한 번 제 자신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