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열지 않음

다사랑중앙병원

전국 최초 3회 연속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전문병원 다사랑중앙병원

생생다사랑

  • home
  • 생생다사랑

환자회복수기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분들의 생생한 회복 경험담입니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통해 새 삶의 희망을 찾으신 환자분들의 진솔한 회복 수기가
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환자회복수기는 회원가입 후 로그인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2019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치료와 회복 그리고 생활의 변화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90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9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우수상]

 

치료와 회복 그리고 생활의 변화

 

○○

 

1. 현재

현재 나이는 만 60세입니다. 다사랑중앙병원을 퇴원한지도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퇴원 후 술이라는 놈은 만만치않게 저를 괴롭혔습니다. 술을 먹고 손목과 발목의 동맥을 면도칼로 끊어 두 번의 자살시도를 하였지만 용기가 없어서 그리고 가족들이 생각나서 실패했습니다. 다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고 손목과 발목을 치료받았습니다. 그렇게 알코올 병원으로 이송되어 6개월 동안 지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술은 강력한 힘을 지닌 괴물이 되어 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몰았습니다. 음주조절 능력을 상실해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면 멈출 수 없었고 혼자 힘으로는 술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머리로는 술을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술을 마시는 자신을 보면서, 술 앞에서 너무나도 나약한 제 모습을 보면서 한심했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죽고 싶지 않았고, 이제는 술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다시 술을 마시면 죽을 것 같았고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인 죽음의 무덤으로 갈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위대하신 힘(, AA모임, 어머니 등)께 맡기고 간절히 도움을 청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에게 신기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술 냄새가 달콤하고 향기로웠지만 이제는 역겹고 냄새도 맡기 싫었습니다. 술병 속에서 파멸과 고통, 죽음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술로 지금까지 뒹굴었던 저의 초라한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술을 이기고 감정과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위대하신 힘, 그 분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단주에 성공해 지금까지 생활을 잘해오고 있습니다. 딸과 아내와의 관계도 좋아져 마트도 함께 다니며 일식 뷔페집에서 맛있는 음식도 종종 먹곤합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과자와 햄버거 등을 딸과 아내에게 사주기도 합니다. 추석이나 구정 명절에는 작은 돈이나마 맛있는 것을 사드시라고 장모님께 용돈도 드리게 되었습니다.

 

2. 과거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아버지가 술을 드신 날은 집에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습니다. 소변이 마려워도 술 드신 아버지가 무서워 아버지가 주무실 때까지 참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런 제가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때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불평, 불만을 하며 술을 마시다보니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양이 늘어갔습니다. 술을 토하고 술을 한번 입에 대면 만취가 될 때까지 마시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카투사에 지원입대해 군생활을 하며 휴가차 집에 들렀을 때 기술하사관으로 임관한 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였지만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부모님과 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마음이 혼란스럽고 괴로웠습니다. 그때 인생은 저에게 미지수였고 술로 동생을 잃은 슬픔을 위로했습니다.

 

군을 전역하고 직장을 구해야했습니다. 노량진에서 2년간 공부한 끝에 국가공무원 7급에 합격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3년 정도 근무를 하다가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기위해 퇴직했습니다. 그러나 2차례 낙방을 하자 퇴직금이 바닥났고 아버지께 도움을 받아 1년을 더 공부했지만 불합격하고 말았습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인생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던 저의 어리석고 아둔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인생의 시련과 고통이 저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불합격에 대한 저의 좌절과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음주습관은 더 나빠져 더 많은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마시면 지갑을 잃어 버려 주민등록증, 신용카드를 재발급 받는 일이 잦아졌고 술을 마신 날 저의 행동을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알코올 중독 초기 단계였습니다.

 

3년 동안 세무사 준비를 하며 돈이 많이 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밥상은 더욱 초라해져 덩그러니 밥과 간장뿐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초라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러다간 가족들을 굶어 죽일 것 같아 건설용역회사에 나가 잡부일을 하고 일당 50,000원을 받아 쌀 1포대와 부식을 사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건설현장에서 산업의 역꾼임을 자부하면서 여름에 비지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건설용역회사 사장님의 전도로 인생의 돌파구를 찾고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교회 남전도회에 소속되면서 헌금기도도 하고 성도님들을 위해 봉사하며 술도 7년 동안 끊었습니다.

 

그러나 직장이 없다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심해져 취직을 해야했습니다. 당면 만드는 회사, 주유원, 쇼핑센터 청원경찰, 학원강사, 재활교사 등 직장을 전전했지만 가정생활에 충분한 수입은 아니었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늘어갔고 삶이 허무해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로 전신마취 후 대수술을 4차례나 받았고 1년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사고로 인해 치아가 많이 빠져 제대로 먹지 못해 퇴원할 때는 몸무게가 37kg밖에 안 나가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아내와 딸, 아들이 저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 후 6개월 동안 죽을 먹으며 살자니 고통스러워 전에는 하지 않던 욕과 폭언을 가족들에게 해댔으며 성격이 점점 난폭해졌습니다.

 

육체의 허약함을 만회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운동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나자 몸이 많이 회복되어 중학생 영어, 수학 과외를 하게 되었습니다. 받은 과외비로 딸과 아들에게 용돈을 주었고 아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주자 아들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아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열심히 배워 경기도 인라인 스케이트 대회 3위에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회복되면서 술을 다시 입에 댔고 저의 폭력적인 성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냉장고를 아령으로 내려쳐 곳곳에 흠집을 내고, 거실에 있는 유리창을 박살냈으며, 술에 취해 아들의 엉덩이를 목검으로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패트병에 몰래 술을 넣어 물처럼 술을 마셨습니다. 술이 깨고 나면 내가 이렇게까지 술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한탄스럽고 불쌍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저의 인생 최대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201412월 말, 사랑하는 아들이 하늘나라로 먼저 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동생을 잃고 아들까지 잃어버렸습니다. 병원에서 아들의 싸늘한 시신을 확인하자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마음이 공허하고 가슴이 아렸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너무 슬프다보니 눈물도 나오지 않고 그저 세상을 모두 잃은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세상에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아 죄를 받는게 아닌가 하는 오만 잡다한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아들을 잊어보고자 20151월 중순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입원하기 한 달전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안아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과 몸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술을 다신 입에 대지 않겠다는 결심과 의지를 잊어버리고 저도 모르게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2015627일 아내와 딸의 권유로 우리나라에서 알코올 중독에 대한 체계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딸은 아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의 관리병동과 9주 개방병동에서 받은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첫 번째로 알코올 중독이 뇌 질환이라는 것을 가족병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알코올이 뇌의 손상을 가져와 기억력 감퇴, 판단능력 저하, 현실감각 저하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개인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교활하고 악랄하고 거대한 힘을 가진 물질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 개인을 신체적으로 허약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는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하고, 도덕적으로는 자기 자신만이 옳다는 오만과 교만함을 만들고, 거짓말을 하게 하는 등 인간을 추악하게 변화시켜 인간관계를 파괴하여 가족관계가 멀어지게 하고, 친구를 잃는 등 사회와 단절된 고립된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둘째로 이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알코올중독자임을 인정하고 내가 스스로 삶을 처리하지 못했음을 정직하게 시인하는 것이 알코올 중독 치료의 시작임을 깨달았습니다. 셋째로 중독적 사고인 부정(나는 알코올중독자가 아니야), 합리화(항상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술을 마시는 것), 투사(남의 탓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 등 계속적인 음주로 발생된 문제의 본질과 그 의미를 깨닫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사랑중앙병원의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12단계 12전통 중 첫 단계는 알코올중독자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삶을 정직하게 처리하지 못했음을 정직하게 시인하자는 대목이 있습니다. 핵심은 알코올중독자는 무엇보다 단주에 반드시 성공하여야만 본래 정신으로 돌아와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고 그동안 술로 무너졌던 삶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12단계를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실천과 실행하는 길입니다. 행동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위대하신 힘을 믿든 안 믿든 실행만이 살 길이고 정답입니다. 영원히 첫 잔을 입에 대지말자. 이것이 제가 깨달은 진리입니다. 술로 인한 문제점, 성격적 결함, 금전적 피해액, 술로 인해 피해를 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 그리고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의 문제, 앞으로의 삶의 원칙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삶을 살면서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사항으로 알고 있습니다.

 

3.미래

단주를 제 인생의 최고 우선순위로 두고 살고 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줍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연을 벗 삼아 산책과 운동도 합니다. 유튜브를 통해 방탄소년단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따라합니다. 젊어지고 한결 마음이 정화되며 밝아집니다. 서울여대 교수인 김창옥 교수님의 포프리쇼도 시청합니다. 웃음과 함께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동영상입니다. 역사 대하드라마를 시청하며 지나간 역사 속에서 많은 지혜를 배웁니다.

 

저는 지금도 약물 치료를 하고 있으며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물 복용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술이란 도적놈은 알코올중독자인 우리를 다시 쓰러트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리고 술로 피해 받은 저를 용서하며 피해를 준 가족 등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받으며 보상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중심성이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서로 사랑하며 서로 용서하며 교만함을 버리고 정직하게 살면서 겸손히 위대하신 힘에 저를 맡기고 그 분의 인도함에 따르고자 합니다. 자기 자신, 치료진(상담과 약물치료), 위대하신 힘(, 가족,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된 자들의 모임인 A.A. 등등) 삼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다면 알코올 중독에서 반드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깨달았습니다.

불평과 불만은 인생을 좀먹는 암적인 존재임을 말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임을 말입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임을 말입니다.

 

인생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늘 배우려는 적극적인 자세로 인생을 살고자 합니다. 위의 모든 것이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한 발짝 한 발짝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위대하신 신 앞에서 긍휼과 은혜를 간구하며 인생을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